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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심심할때 읽는 재미난 세계역사 상식(feat 교양있는 우리아이를 위한 세계역사이야기1)

by 유노brain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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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문자 델타(△)가 삼각형 모형인 이유

먼저 델타를 보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의 나일 강을 봐야합니다. 나일 강은 아프리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써 이 지역의 이름을 '나일 델타(Nile delta)'라고 불리는데 이 지역이 삼각형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2. 인류 최초로 기록을 시작한 사람

인류 최초로 기록을 시작한 사람은 이집트 사람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사용한 문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과 한글과 다른 '상형 문자(hieroglyphics)'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상형 문자를 돌로 만든 판에 새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보존이 잘 되었답니다.

 

 

3. 수메르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Sumer)는 이집트 근처에 있는 고대 국가로, 티그리스 강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지역입니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nia)' 이름은 그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Meso'는 '중간'을, 'Potamia'는 '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지역을 가리킵니다. 

수메르인의 경우 이집트인들과 다르게 두 강 사이에 살았기 때문에 축축한 진흙이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진흙에 그림을 새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설형 문자' 또는 '쐐기 문자'라고 합니다.

 

 

4. 피라미드와 미라

이집트가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성장하면서, 왕들은 사후세계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죽으면 내세(사후세계)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시신이 온전하게 보존되어야만 내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미라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오직 제사장들만이 미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라를 만든 후, 이집트 사람들은 여러 보석과 함께 미라를 관에 안치하였습니다.

하지만, 무덤 안에 금과 보석이 많다 보니 도굴꾼들이 이를 훔치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은 미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사자의 몸과 사람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석상 스핑크스를 세우면서 피라미드를 도굴꾼들로 부터 막아준다고 믿었습니다.

 

 

5. 함무라비와 바빌로니아 

바빌론의 왕이었던 '함무라비'는 강력한 군대를 이용해 메소포타미아 남쪽 지역을 점령하고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도인 바빌론의 이름을 따서 나라를 '바빌로니아'라고 지었습니다.

함무바리는 매우 현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통치하는 데 있어 단순히 무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법들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우리에게 알려진 최초의 '성문법'으로, 당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5. 중국 문명

중국의 문명은 '황허강 유역'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황허강 유역은 습기가 많은 비옥한 땅이었기 때문에 벼농사가 잘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초기에는 마을 단위로 살아갔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중국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그 지도자의 이름이 바로 '황제'입니다.

현재 황제에 대한 내용이 많이 없지만 사람들의 병을 고쳐줬다는 설이 있습니다.

 

황제의 아내이자 왕비였던 누조는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누에고치로 만든 비단 실로 천을 짜면 물처럼 영롱하게 빛이 나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이러한 비단 실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6. 은나라와 한자

황제가 사라진 지 수백 년 후, 새로운 지도자 '탕'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은나라를 세운 인물로, 은나라 시대는 청동기 시대에 속합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청동으로 무기, 바퀴, 농기구 등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또한 은나라 시기에는 중국인들이 최초로 글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은나라 시기 중국인들이 사용한 문자는 '상형문자'로 영어로 'pictograms'이라고 합니다.

어원을 보면 'picto'는 '그림', 'gram'은 '문자'를 뜻합니다.

즉 상형문자는 그림처럼 보이는 글자를 뜻합니다.

한자는 이러한 그림 문자에서 발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 투탕카멘

어린 소년 '투트(tut)'는 7살의 나이에 이집트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파라오에 오른 후 이름을 '투탕카멘'으로 개명했으며, 이 이름은 '신들의 왕 아문을 섬기는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달리, 투탕카멘은 오랫동안 이집트를 통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무덤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왕가의 계곡'에 숨겼으며, 20세기에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투탕카멘의 미라는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그의 무덤에 수많은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세계적으로 퍼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파라오의 저주'로도 유명합니다.

실제로 무덤 발굴에 참여한 일부 사람들이 연달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8. 바빌론의 공중 정원

바벨론의 공중 정원은 매우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그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동쪽의 페르시아를 경계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기에 바벨론에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페르시아 공주와의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공주의 얼굴조차 모르는 상태였지만, 결혼을 통해 페르시아 왕을 장인으로 삼으면 바벨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마침 페르시아 왕 역시 바벨론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었기에 결혼을 허락하며 두 나라 간의 동맹이 형성되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페르시아 공주의 이름은 '아미티스'였으며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의 결혼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미티스는 고향 페르시아의 산과 계곡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아미티스를 위로하기 위해 '공중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정원은 페르시아의 풍경을 본뜬 아름다운 정원으로, 오늘날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힙니다.

 

 

9. 알파벳 어원 유래

영어를 배우면서 우리는 항상 알파벳을 처음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알파벳의 어원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드물 것입니다.

 

알파벳이 그리스 문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알파벳이라는 단어는 그리스 문자으의 첫 글자인 '알파(A)'와 두 번째 글자인 '베타( β)'에서 유래했습니다.

따라서 '알파벳'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면 '알파'와 '베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 문자는 고대 페니키아 문자를 기반으로 발전했으며, 이는 알파벳 체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고대 페니키아에 관한 이야기도 책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 있다면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0. 스파르타 vs 아테네

고대 그리스 도시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을 묻는다면 대부분 '스파르타''아테네'를 떠올릴 것입니다.

이 두 도시 국가는 같은 그리스에 속했지만, 성격과 특징은 매우 달랐습니다.

 

스파르타는 전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어릴 때부터 군사적 훈련을 받으며 명령에 복종하는 법, 용감하게 싸우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반면,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법을 배웠으며, 철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학문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11.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한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힘을 합쳐 승리를 거두며 평화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 동안 아테네는 파르테논 신전을 세우는 등 문화와 건축 기술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가 강해질까 두려워하며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결국 두 강대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깨고 전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전쟁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입니다.

이 전쟁은 무려 27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결과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12.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 국가들이 오랜 싸움으로 힘이 약해졌을 때, '마케도니아'라는 나라가 그리스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 왕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으로 지쳐 있음을 알고, 그리스를 공격하여 지배했습니다.

 

필립 왕은 에게 해를 건너 소아시아로 진출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알렉산더(Alexander)'의 이름은 '사람들의 통치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업적 덕분에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버지 필립 왕이 꿈꿨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후,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야망은 끝이 없었고, 정복의 행보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알렉산더는 군대를 이끌고 인도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코끼리를 전투에 이용하는 법을 배우며 인도 지역 상당 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 원정 중 많은 병사들이 긴 여정과 열악한 환경에 지쳐갔습니다. 오랜 정복 활동으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알렉산더는 결국 인도 원정을 멈추고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위대함이 후대에 기억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이며, 오늘날 이집트에 위치해 있습니다.

 

 

 

 

13. 로마의 기원

로마 제국의 기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늑대와 두 아기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옛날 '누미토르'라는 왕에게는 두 쌍둥이 손자가 있었는데, 그의 동생 '아물리우스'가 반역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고 두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시녀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바구니에 넣어 티베르 강에 흘려보냈습니다.

 

바구니는 강을 따라 흘러갔고, 암컷 늑대가 두 아기를 발견해 젖을 먹이며 돌보았습니다. 쌍둥이의 이름은 '로물루스'와 '레무스'였고, 이들은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발견되어 그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성인이 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할아버지 누미토르의 복수를 위해 아물리우스를 몰아내고, 이후 자신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이름과 위치를 두고 갈등이 생겼고, '로물루스''레무스'를 죽인 후 도시를 '로마'라 지었습니다. 이렇게 로마의 첫 걸음이 시작되었고, 로물루스는 로마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이 신화는 로마 제국의 기원과 그 정신을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14. 로마 제국

초기 로마에서는 그리스 신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으로 여겼습니다. 다만,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들의 왕 '제우스'는 '주피터'로, 전쟁의 신 '아레스'는 '마르스'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넵튠'으로 불렀습니다.

로마인들은 최초로 콘크리트를 사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하게 된 로마인들은 도시 곳곳을 연결하기 위해 수로와 도로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를 위해 모래와 자갈을 도로에 먼저 깔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도시 곳곳에 길을 연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은 이러한 콘크리트를 건축에도 활용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콜로세움은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지어진 건물입니다.

 

 

15. 쥴리어스 시저

우리에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라고 알려진 '쥴리어스 시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줄리어스 시저는 뛰어난 리더쉽과 웅변술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시저는 야망이 많은 인물로써 집정관이 되고자 했으나, 당시 로마의 집정관 자리는 두 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시저는 집정관을 3명의 통치자로 지배하는 '삼두정치'를 결성하여 로마 정치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시저는 켈트족 상대로 갈리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어 로마 내에서 그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이 승리로 시저의 군사적 역량을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로미 시민들에게 영웅으로써 비춰졌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후에 시저가 로마에서의 왕 위치에 도달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해서 많이들 알 것 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저가 로마의 왕이 되었을 때 한 때 집정관이였던 폼페이우스가 이집트에 도망을 갔습니다.

로마의 왕 시저 입장에서는 화근인 폼페이우스를 제거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집트를 정복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이집트에 있던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남동생은 이집트를 살리기 위해 폼페이우스 목을 베어 시저에게 바쳤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 욕심이 있는 여자로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시저를 유혹하여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시저는 후에 자신의 오랜 친구인 브루투스에게 죽임을 당하며,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16. 아우구스투스

시저가 죽은 후 원로원들은 시저의 조카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를 책임지기를 바랐습니다.

처음에 옥타비아누스는 집정관이 되기 망설였지만, 많은 원로원들과 시민들이 그가 집정관이 되길 원해 결국 이를 수락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도 줄리어스 시저처럼 주변 국가들을 정복했고 이에 로마가 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줄리어스 시저와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았습니다.

원로원들은 옥타비아누스가 왕이 되기를 원했지만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에는 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을 하며 왕을 거절했습니다.

대신 원로원은 그를 왕 대신 '제 1 시민'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제 1시민'은 라틴어로 'princeps' 이며 영어 프린스 'prince' 또한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후에 원로원들은 옥타비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 라는 새 이름을 지어졌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축복받다'와 '황제'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줄리어스 시저와 아우구스투스 시저에 대한 존경을 담아, 달의 이름을 두 황제 이름으로 가져왔습니다..

바로 줄리어스 시저는 7월(July)로 아우구스투스 시저는 8월(August)로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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